작은 것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추억의 여정이 된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풍경/자연&풍경

충북 괴산 화양구곡&홍범식고택 탐방트래킹

kimih 2024. 3. 11. 19:38

3월 9일 따사로운 햇살에 역사가 흐르는 화양구곡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과 기암괴석에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화양구곡 탐방트래킹에 나섰다.

충북 괴산 속리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화양천을 따라 하류에서 약 3㎞에 걸쳐 올라가며 1곡부터 9곡까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의 절경 9곳에 이름을 붙여 2014년 8월 28일 명승(제110호)으로 지정되었다. (소요시간 편도 약 1시간 30분)

화양구곡 주차장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78
주차료 승용차 기준 1일 5.000원이며, 화양구곡 입장료는 없음.

주차 걱정은 안해도 될 만큼... 주차공간은 아주 넓다.

 

화양구곡의 첫 번째 명소인 '화양 제1곡 경천벽'은 주차장에서 아래쪽으로 10여 분 가까이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 하여 경천벽이라 한다.

제1곡 경천벽

 

경천벽을 둘러본 다음 화양구곡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 탐방지원센터에서 국립공원 직원분들과 함께 봄철 산불예방 캠페인 현수막을 펼치며 산불예방의 중요성을 알리며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화양구곡 탐방 트래킹에 앞서 한층 고취시키며 시작한다.

왜 화양동이라 불릴까요?
속리산 국립공원 안내도
화양2교에서 바라본 수중보에서 맑은 물줄기가 내려오고...

 

화양2교를 건너면 계곡의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는데, 맑은 날 구름의 그림자가 그대로 비친다고 하는 '화양 제2곡 운영담'이 나온다.

제2곡 운영담(운영암)

 

운영담을 지나자마자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적이 나온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말년을 지낸 곳으로, 화양서원(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렀던 장소에 세운 서원으로 조선시대 기호학파 학자들이 많이 모이던 장소)과 만동묘(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가 있던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송시열 선생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서, 조선 효종(1649년~ 1659년 재위)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 유적은 송시열 선생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으로, 일제가 파괴하였으나 2006년까지 만동묘 7동과 화양서원 2동을 복원하였다. 유적 주변에는 송시열 선생과 관련된 암서재, 읍궁암 외에 '충효절의' '비례부동'등 바위에 새긴 글자(암각자)가 많이 남아 있다. 라는 괴산 송시열 유적에 대한 안내판이 화양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화양서원의 입구에서 정면으로 양추문
화양서원의 입구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 승삼문과 송자사 그리고 우측으로 증반청
존사청(좌), 풍천재(우)
만동묘로 가는 성공문
다시 밖으로 나와 담장 너머로 바라본 화양서원 전경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선생을 조선 영조임금이 '송자(宋子)'로 칭하하고, 정조 때는 '송자(宋子)'로 격상되었다고 하니... 송자(宋子)라고 존칭 받은 대학자로 공자와 맹자처럼 성 뒤에 '자'(子)자가 붙은 조선의 인물 중 송시열을 '송자(宋子)'라 칭했으니...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위대한 학자에게 붙는 경칭과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암 송시열선생을 제향하는 묘정비가 화양서원 앞에 세워진 비석

 

읍궁암은 탐방로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화양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화양 제3곡 읍궁암'은 우암 송시열선생이 조선 17대 효종임금이 돌아가신 것을 크게 슬퍼하며...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하여 읍궁암이라 불린다고 한다.

제3곡 읍궁암
금사당 앞에 세워져 있는 아홉 골짜기 기암괴석 화양구곡 안내 표지석

 

운영담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 식당가 상가단지가 이곳까지 형성되어 있으며, 금사담은 계곡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처럼 반짝거린다고 해서 '화양 제4곡 금사담'이라고 한다.

구곡 중 가장 아름답다는 제4곡 금사담과 암서재(정자)
화양3교 앞에 도명산 탐방로 입구가 보인다.

 

화양3교를 건너며 우측으로 돌아보니 도명산 기슭 높은 곳에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층을 이루고 있는 '화양 제5곡인 첨성대'가 올려다 보인다.

제5곡 첨성대

 

평지와 다름없는 걷기 편한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채운암이란 암자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구름을 찌를 것 같이 높게 서 있다고 하여 '화양 제6곡인 능운대'가 버티고 서 있다.

제6곡 능운대

 

이번에는 계곡 옆으로 뻗쳐 있는 괴암이 마치 용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화양 제7곡인 와룡암'이라 부른다고 한다.

제7곡 와룡암
학소대 앞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도명산에 올라갈 수 있는 탐방로는 통제되고 있다.

 

'화양 제8곡인 학소대'는 옛날에 청학이 바위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학소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8곡 학소대

 

한동안 편안하게 이어지던 탐방로는 학소대를 지나며 살짝 오르막 구간을 올라서면 '거북바위' 거북이가 화양천으로 엉금엉금 내려가고 있는 모양새 바위다.

거북바위

 

화양구곡 마지막 명소인 파천은 학소대에서 1km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안내 표지판에서 곧장 가면 자연학습원 방향이고, 오른쪽 비탈진 산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야 만나 볼 수 있는 흰 바위가 넓게 펼쳐진 '화양 제9곡 파천'이 나온다. 다시 원점회귀로 이곳으로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선다.

제9곡 파천(파곶)
파천에서 바라본 화양구곡 하류방향

 

화양천 절경이 아름다운 화양구곡 탐방을 마치고...

괴산 일완 홍범식선생의 고택이자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선생의 생가 탐방에 나선다. 홍범식선생의 고택인 유적지는 자유관람이 되도록 무료로 개방이 되어 있다.

홍범식 고택 위치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16

홍범식고택 전경

 

이 집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순국한 일완 홍범식(1871~1910)의 고택이자 역사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홍범식의 아들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1919년 3월 19일 괴산 만세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하였다고 하는 안내판이 홍범식고택 앞에 세워져 있다.

 

홍범식고택 대문채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솟은대문이 앞뒤로 두 개가 보이는데, 앞은 '아랫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고, 뒤는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며... 우측은 안채를 마주 보는 '광채' 뒤편이고, 광채 안쪽에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채의 안쪽 마당과 사랑채
홍범식고택 안채
의사홍공범식추모비(義士洪公範植追慕碑)

 

일완 홍범식선생은 충북 괴산에서 1871. 7. 29일 태어났으며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그 이후 1909년 금산군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이처럼 홍범식고택은 순국열사와 홍범식의 아들은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홍명희는 해방 후 1948년 월북하여 엇갈린 부자(父子)의 운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택을 만나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