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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고궁&사적

천년의 숨결 구례 화엄사 탐방

kimih 2023. 3. 27. 19:23

3월 25일,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천년고찰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는 화엄사를 찾았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4.000원(일반)을 지불하고, 주차장에서 사찰과 이어주는 짧은 구간의 대나무 숲길을 지나오면, 방재교 건너 지리산 화엄사 불이문이 눈에 들어온다.
담장 우측으로 연기암(2.0km)이 연결되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천왕봉( 32.5km)까지 이어지고...

구례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 존자가 창건했다고 한다. 절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고 하였다. 자장 법사와 원효 성사, 의상 대사, 도선 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이 중창하여 조선 세종6년(1424)에는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했다고" 하는 설명을 하는 화엄사 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화엄사 종합안내도
담장 너머로 화엄원이 올려다보인다.
'지리산 화엄사'이라고 쓰여있는 불이문
불이문을 들어서니 우측에 위치한 관정요 앞에 핀 분홍매화는 아쉽게도 이미 절정을 지나 지고 있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경내를 들어서면 눈과 귀, 입을 각각 가린 3개의 아기동자상이 금강문까지 연결된 도보 따라 나란히 앉아 웃는 얼굴로 귀엽게 설파한 듯 하다.

경내에 들어서니 금강문 가는 길목에서 아름답고 탐스러운 동백꽃이 반겨준다.

불문(不聞)
산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라는 법구경에 나오는 문구

성보박물관
벽암국일도대선사비
금강문 앞에서... 화엄사 종무소 덕장전(템플스테이 수련원 입구 반야문)
금강문을 들어서며...
금강문을 지나면 우측에 청풍당을 올려다보며...
천왕문
사찰을 지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좌), 남방증장천왕(우)
천왕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만월당 사자문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만월당
보제루 우측으로 법고루를 올려다보며...
보제루
보제루에서 바라본 만월당 전경

대한민국 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本尊) 불상으로 모신 절의 중심 법당이지만 화엄사 대웅전 법당에는 목불(木佛)인 삼신불(三身佛)*이 모셔져 있다. 화엄사 대웅전은 본래 지붕 전체가 청기와로 이루어진 대웅상적광전 법당이었다. 정유재란 때에 타 없어져, 인조 8년(1630)에 벽암(碧巖) 스님이 문도와 함께 중건하였다. 삼신 불상은 인조 10년(1632)에 안치하였다. 대웅전 편액은 인조 14년(1636)에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義昌君)이 쓴 것이다. 법당 크기는 전면 19.5m, 측면 12m로,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부처님 머리 위에 못과 풀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천개(天蓋)**를 조각해 놓았는데 우아하고 형태가 일품이다.  화엄사 대웅전은 규모도 크고 아름다우며 건축 형식의 특징과 균형이 잘 잡혀있어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라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으며... 화엄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웅전이 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 석탑은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신라 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 국사(道詵 國師)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한 탑이다." 라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는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쌍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에 중앙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동 오층석탑이다.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대한민국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조선 숙종 28년(1702)에 계파 대사가 중건한 중층의 대불전이다. 원래 각황전 터에는 2층 4면 7칸 사방 벽에 화엄 석경이 새겨져 있던 장육전(丈六殿)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에 불타 없어졌다. 장육전 중창 불사는 영조(英祖)의 모친(母親) 숙빈최씨(淑嬪崔氏, 1670~1718)도 동참하여 숙종 25년(1699)에 시작하여 숙종 28년(1702)에 완공하였고, 장육전은 2층 70칸으로 장엄함을 비길 데가 없다. 연잉군(영조)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1703년에는 삼존불(三尊佛), 사보살상(四菩薩像)을 완성하여 일주일에 걸쳐 경찬 대법회(慶讚 大法會)를 열었으며, 장육전 중건 불사를 회향하자 조정에서는 각황전이라고 사액 하였다. 예조는 한격 높여서 올려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이라 하였다.  라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 목조 건축물 각황전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건물인 각황전은 바로 옆에 있는 대웅전보다는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각황전 앞에는 화엄사 서 오층 석탑(보물 제133호)은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쌍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에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각황전 앞에는 석등과 서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황전 옆쪽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홍매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한민국 보물 제300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이 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조성한 것이다. 사자 네 마리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4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인 희로애락(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뜻한다. 사자의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 또는 감로법(甘露法),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탑을 4사자 감로탑이라고도 한다." 라는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다.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대한민국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 조사가 조성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으로, 높이가 6.36m이다. 석등의 형태는 3천 년 만에 한 번 핀다고 하는 우담바라화의 꽃잎인데, 이 꽃은 부처님 오심이 지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석등이다." 라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으며... 한반도에 남아 있는 고대 석등 중 가장 큰 석등으로 현재까지도 외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대웅전 우측에 명부전
들매화 보러 가는 길은... 이 삼전 광희문 좌측으로 난 짧은 계단으로 올라 구충암을 거쳐가면 '들매화'를 만나 볼 수 있다.
부서져 자연스럽게 쌓아놓은 석탑과 구충암
구충암 천불보전 전경
수령이 450년 추정되는 천년기념물 제485호 '들매화' 꽃잎은 바닥에 하얗게 거의 다 떨어지고 완전 끝물이다.
고즈넉한 전각의 기와지붕에도 이 봄을 화사하게 여는 홍매화가 봄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게 붉게 물들여 수놓았다.
화엄사의 홍매화 끝물도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있는 이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桂坡) 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 안내판에서 설명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금정암까지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대웅전 뒤뜰 처마에 바람에 의지해 마음이 맑아지는 풍경소리! 바람소리!
다시 대웅전 앞으로 돌아와서 바라본 각황전
대웅전 좌측으로 영전
각황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사자 삼층석탑과 견성전(적멸보궁)이 나온다.
네 마리의 사자가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 )
견성전(적멸보궁)
범종각
범종각에 올라서니 아래로 만월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운고루
내림길에... 보제루에서 내려오는 계단 길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상왕문
원융료
청풍당

붉은 홍매화 끝물에도 봄기운 가득 메운 화엄사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국보와 보물들이 가득한 사찰로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와 역사가 깊이 담겨있는 사찰의 즐거움을 듬뿍 누리며 둘러본 하루였다.

 

[부록]
상경길에... 3년 만에 마스크를 벗어 던진 이 봄 꽃들도 남도의 섬진강변을 따라 유난히 일찍 반갑게 찾아왔다.